죽음에 대한 이야기

이제 내 나이도 40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고, 한참 일할 나이긴 하지만 40이란 숫자가 주는 그 감각은 오묘하다.

난 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젊지만은 않은 그런 느낌이다.

내가 자주 나갔던, 지금은 코로나 떄문에 열리지도 않은 복싱 생활 체육대회에도 이제 난 40대부에 나갈 수 있다.

내가 처음 나갔을때가 30대 초반부에 나갔었으니, 시간 참 야속하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내 아이들이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10살, 8살이다.

오늘 경주 어디에선가 8살 아이가, 딱 우리 첫째 나이의 아이가 놀이기구를 타다가 죽었다.

재미있어 보인다고 언젠가 경주에 놀러가면 아이랑 같이 타야지 했던 놀이기구이다.

이런 뉴스가 보이게 되면, 부모로써 가지는 느낌은 비슷하다.

우리 아이에게 저런 위험한 놀이기구를 타게 하려 했다는 죄책감과 우리 아이가 저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느낌의 모순이 뒤섞여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저런 놀이기구 절대 우리 아이에게 태우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함께 딸려온다.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했지만 안심이 되었다. 죄책감이 들지만, 속상하지만 안심이었다.

 

그 부모는 어떤 느낌일까. 

그 아이와 함께 탔다던 그 사촌누이는 어떤 기분일까.

내가 그들이었다면 나는 살 수 있을까.

그 죄책감은 어떻게 안고갈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무슨 말을 건내야할까, 그 말은 과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하는 가당치도 않은 상상을 한다.

 

내 아이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아빠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게 누구라고? 둘째야?”

“나랑 언니”

“맞어 항상 명심해. 아빠 죽어도 그거 잊어먹으면 안돼”

 

내가 죽음을 처음 피부로 와닿게 느꼈던 건 우리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다. 내가 8살이었던 해다.

할머니는 온 친척들이 모두 모인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셨다.

다시는 못 만난다는 걸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순간 느꼈다.

내가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었던 모습들이 겹치면서 어린 나이에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는, 아빠는 계속 울었다. 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하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 느끼게 되는 죽음이란 감정은 누구일까. 나일까. 누구일까.

그게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생각은 든다.

 

 

박덕수

꼭 이렇게 덕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 같지만 덕수는 건강하다. 그냥 생각해보니 난 덕수이야기를 적어본 적이 없어 그냥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덕수는 대학친구가 분양받은 고양이의 새끼였다. 분양해 달라고 졸랐었고, 그때 즈음이 개에서 고양이로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옮겨가던 시기였다.

취업을 하고 곧 덕수가 태어났고, 나는 덕수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에 대해 알고 있던 이미지는 흔한 그 이미지였다.

  • 낯을 가린다.
  • 주인을 몰라본다.

덕수는 달랐다.

내 자취방에 온 첫날. 덕수는 침대위를 마음껏 뛰어다녔다. 낯가림이 심했던 지 어미와 달리 덕수는 처음부터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누워잤다.

 

누가 그랬다. 고양이는 운동신경이 좋아서 높은데서도 잘 뛰어다닌다고.

덕수는 달랐다. 멍청하고 둔했다. 심지어 높은데서 미끄러져서 송곳니 하나가 뿌러지기까지 했다.

 

덕수와 동네 시장에도 자주 나갔다. 그땐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아기고양이였고 힘도 약했다. 그냥 잠바안에 넣고. 어깨위에 올리고 시장에 나갔다. 그렇게 다니면 고양이들이 산책 고양이가 된다고 누가 그랬다. 익숙해진다고.

덕수는 달랐다. 자기 발소리에도 자기가 놀라는 겁쟁이였다. 더 하면 덕수가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

 

늘 순한 내 새끼라고 생각했지만, 산책하다 절봉이를 처음 줍줍한 날이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절봉이를 덕수는 무척 경계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막았고, 밥도 못먹게 으르렁 거렸다.

적응 중인 절봉이가 나를 물자 절봉이를 제압했다.

 

덕수 아기를 너무 보고 싶었다.

언젠간 태어날 내 아이가 대를 이어서 모실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수소문 끝에 입양한 셋째고양이 초롱이는 덕수가 멍청하다며 온몸으로 거부했다. 동네 바보형 같은 덕수는 끝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고. 둘은 결국 맺어지지 못하고 중성화를 당했다.

 

자취방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덕수가 갑자기 나에게 자기 머리를 박았다.

일반적으로는 애교의 뜻이지만, 덕수는 온몸으로 내가 괜찮은지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걸 느낄 수가 있었다.

 

어느새 덕수는 15살이다. 절봉이도 그 즈음이고.

사람으로 치면 60이 넘는 할아버지지만.

우리집에 온 첫 날 침대에서 뛰어다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