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31

#1

오랜만에 우리가족만 회사콘도에 당첨이 되어 놀러왔다.

딸아이 둘과 목욕 후에, 평상시라면 책을 읽어주겠으나 콩쥐팥쥐 이야기를 들려주고 – 그마저도 기억나지 않아 네이버에서 검색 후에 이야기를 들려줬다. –

우리가족만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다. 나와 아내 첫째딸, 둘째딸. 가족이다. 

#2

첫째 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도 이불 덮어요 춥겠다.

아빠, 나는 다른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 엄마아빠도 좋지만, 우리 엄마아빠가 제일 좋아요. 내가 다칠까봐 걱정도해주잖아요.

아마 그게 딸 아이가 지금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일테다. 첫째는 이제 7살이다. 

그럼에도 그 진심이 매우 와닿았다. 딸아이의 엄마아빠에 대한 사랑이 순간 툭 하고 나를 찌르는게 느껴졌다. 

#3

내일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뵈러 가는 날이다. 지난글이 할머니 돌아가실때 적은 글이니깐, 시간은 참 빠르다. 어느새 8월이네.

사실 아직도 마지막으로 할머니 뵌 날, 내가 카메라를 놓고 와서 찾으러 할머니집에 갔을때. 할머니와 작별하면서 안아드렸을때, 또 올께요. 하면서 인사할때 날 쓰다듬어주던 그 손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기억난다. 감촉이 기억난다. 우리 할머니가 치매기가 있으셨지만 날 기억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는 그 감촉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카메라를 놓고와서 가서 안아드린게 정말 다행이다. 

 

20190411 –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1
외할머니는 올해로 93이셨다. 무척 건강하셨지만 몇해전에 길에서 넘어지신 이후로 외출을 못하시게 되셨고, 
휠체어를 타게 되셨으며, 약간의 치매기까지 찾아오셨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할머니는 날 늘 알아보셨다. 
외할머니가 날 보면 여쭈셨던 질문은 한결같았다.

고양이는 잘 있니.
너는 머리 그렇게 하고 회사 다니니?

점점 말투가 느릿느릿해 지셨지만, 나를 알아보셨다. 민규야 하시면서.
그날도 날 알아보셨다.

#3
평소에 덤벙대던 나는 그날도 카메라를 할머니집에 놓고 왔다. 
그 카메라는 우리 가족의 모든 사진을 책임지기에 나는 5시 즈음에 회사에서 나섰다.
외할머니는 간병인하고 함께 계셨고,
그 느릿한 눈으로 넌 왜 어제도 오더니 오늘도 여기 왔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할머니 나 덤벙대서 카메라 놔두고 왔어.
다음에 또 올께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하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꼭 안아드렸다.
할머니도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 느낌이 아직 기억이 난다.

#4
그렇게 뵙고 온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일요일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내가 운다.
왕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 외할머니는 우리 애들의 증조할머니기에
우린 왕할머니도 통칭했다.

어젯밤에 아무일 없이 주무셨는데 깨지않으셨다고 한다. 

#5
그렇게 실감은 나질 않았지만, 
마침 서울에 있었기에 빨리 갔다. 
우리 외할머니 보러.
하지만 입관때까지는 외할머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6
그렇게 3일을 장례식장에서 잤다.
오는 사람들마다 복받으셨다고 호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너무 슬픈데 호상이란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7
많은 게 변할 것이다.
늘 외할머니 집에 모였던 가깝지만 멀었던 외가식구들은 서로 얼굴보기가 더 힘들어질테다.

나는 우리 외할머니가 영원히 사실 줄 알았고, 기대했나보다.
내가 8살때 내 손 잡고 국민학교에 바래다 주셨는데,
내 딸아이가 내년에 8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