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8 – 절봉이가 죽었다.

나이가 그래도 마흔이 되면서,

가식적인 것들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는데,

내가 사실 가식적이라고 느끼는 부분들은 그, 얕게 혹은 옅은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티비에서 보여지는 육아프로그램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려동물의 죽음이었다.

 

나는 그 동안 누군가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하는 그 문장들에 내가 보냈던, 느꼈던 감정들이 사실은 가식이라는 걸 잘 몰랐다.

절봉이는 갑자기 갔다.

여느 때처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거르고, 운동을 하고 있었더랬다.

전화가, 부재 중 전화가 7통 정도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나를 포함해서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었기에,

코로나를 더 걸릴 것도 없었는데, 느낌이 안 좋았다.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말했다.

절봉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나왔기에 인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간식을 주려고 부르니 덕수만 나오고 나오질 않더랜다.

원래 입이 짧은 놈이었다. 

 

침대에 축 쳐진채 누워있다고 했다.

빨리 반차를 쓰고 집으로 달려갔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흔한 거짓말일거라는 말과.

초롱이가 죽은지 한달이 채 안된 것 같은데 말이다.

 

절봉이는 침대위 내 머리 근처에 누워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분명 어제까지 만해도, 내가 부르면 달려오던 놈이었다.

내 말만 들었다. 내가 자기를 줏어온걸 아는건지.

 

그렇게 좋아하던 내 머리맡에 누워있는데,

고양이는 죽으면 그 투명하던 눈빛이 탁해진다.

고양이는 죽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 

 

절봉이는 그렇게 누워있었다.

나는 깨달았는데, 내가 그 동안 보냈던 위로와 마음들이 그냥 얕은 공감이라는 걸 알았다.

정확히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절봉이는 우리집 안방 나무로 된 유골함에 담겨져 왔다.

 

이게 그렇다. 

뭐가, 동물 한 마리 죽었을 뿐인데 뭐가 그리 슬픔이 오래가냐고 하면

이거는 어떻게 공감시켜줄 방법이 없는데.

다 필요없고 그냥 가끔, 자주 너무너무 보고싶다.

내가 콧잔등을 만지면 그리 좋아하던 놈인데, 

나는 아마도 또 영원히 절봉이가 나랑 같이 늙어갈거라고 착각을 했나보다.

쉬이 슬픔이 가질 않으니, 

나는 차마 글을 쓸 엄두도 못 내었다.

 

어제는 프랑켄위니라는 팀버튼의 초기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교통사고로 죽은 자기 강아지를 그리며 주인공 빅터는, 

너의 마음속에 살아있을거야 라는 부모의 위로에,

잘 모르겠고 그냥 지금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

절봉이가 너무 생각나서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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